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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상상력과 시적 시공간

2023

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사물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보이지 않아야만 하는 것을 들여다보려는 이러한 의지를 근거로 하여, 기묘하게 팽팽한 몽상들이, 미간을 긴장되게 하는 몽상들이 형성된다. 그때 관여하는 것은 놀라운 광경들을 기다리기만 하는 수동적 호기심이 아니라, 공격적인 호기심, 어원적 의미에 있어서 수사관적(搜査官的) 호기심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형상이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있는 듯 없는 듯, 자기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지 않는다. 더 선명히 보이는 위치를 찾아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반짝이는 빛이 자꾸 눈에 맺힌다. 그 주변에는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작품 속으로 공간이 침투한다. 형상의 정체는 ‘유리 조각’이다. 커다란 유리의 부분이자 작가에 의해 선택되고 창작된 미적 대상이다. 조금은 불안하지만 고고하게, 전시장 바닥(실제 공간)에 직립한 유리 구조물들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과 어우러지며 지각과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 좌대 위에서 혹은 벽에 설치되어 자신만의 예술적 공간을 점유하는 작품들도 예외는 아니다. 뚜렷한 윤곽선이 사라질수록 작품이 관계 맺는 공간은 확장되고, 작품의 존재감은 깊게 각인된다. 전하려는 말을 아끼는 만큼 의미는 넓어지고 깊어진다.


홍유영에게 “공간은 유연한 것”이기에 관계를 통해 끝없이 재구성될 수 있다. 그 관계에는 발견된 오브제도 중요한 요소로 기능한다. <Negative Landscape> 시리즈(2023)는 제목이 암시하듯 “시각적으로 잘 안 보이고, 약하고 투명한 것을 통해 무언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네거티브(negative)는 그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다. 물질적인 공간으로 한정할 수도 없다.” 작가는 “네거티브와 포지티브(positive)가 서로에게 어떤 관계를 맺고 변화를 주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한편 발견된 오브제의 시작은 작가가 거주하던 집의 재건축이었다. 아파트가 철거된 현장에서 작가는 해체된 건축의 잔해들을 수집했다. 그중의 하나가 유리였다. 창문이었을 것이다. 커다란 탁자 위에 얹어졌던 것도 같다. 출처를 추측하는 과정, 공간의 이동, 의미의 변화는 모두 중요하다. 수집할 대상을 정해놓지는 않는다. “오히려 머릿속은 하얗게 비워진 상태에 가깝다.” 말로,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유독 눈에 들어오는 사물들이 있어서 그 시간과 공간의 미묘한 분위기에 반응하며 채집했다. 작가가 오브제를 응시하는 순간부터 작업은 시작된다.


오늘날 도시의 건축물인 집이 “단순한 수평성(水平性)에 지나지 않게” 되었고, “내밀함의 가치들을 알아보고 분류하기 위한 근본적인 원리의 하나”가 아니라 해도 여전히 “집은 인간의 사상과 추억과 꿈을 한 데 통합하는 가장 큰 힘의 하나” 이므로 많은 생각과 감정이 오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모두를 잠시 밀어둔다. 발견된 오브제의 내면을 바라보려는 작가는 고민하며, 사유하고, 상상한다. 홍유영의 시공간에서 연마되고 가공된 유리에는 그것이 처음 머물던 공간에서의 미미한 흔적이 남아있다. 작가의 섬세한 손길이 일부러 남겨둔 것이다. 그렇게 오브제가 머물던 일상의 시공간과 작가의 세계, 그리고 전시장에서의 시공간을 이어주는 가느다란 연결고리가 선명해졌다.


자본주의와 산업 시대를 보여주는 파편들, 그리고 재건축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순간 누군가의 머릿속에서는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영역과 예술적 영역의 연결이 일어날 것이다. 작가가 지각하는 도시의 풍경들, 그 안과 밖의 공간들, 그 속에서 찾아낸 물체의 재료들에서 특정한 사회 상황이나 이데올로기가 발견될 수도 있다. 홍유영 역시 동시대를 살아가며 반응하는 작가이기에 그와 같은 해석도 유의미하다. 그러나 스페이스몸미술관에서의 전시 [위상들(Topologies)](2023)에 놓인 작품들은 그러한 서사와는 거리를 유지한다. 상징이 아닌 형식적이고 재료적인 실험의 집합체로 존재하며 주변에 놓인 작품들 그리고 공간과 관계 맺는다.


단단하지만 깨지기 쉬운 물성, 약하면서도 공격적인 물체, 공간을 분리하지만 너머의 공간을 그대로 보여주는 투명한 벽, 분리인 동시에 소통 가능성, 단절이나 완전한 차단은 아닌 상태인 유리의 특유성은 참 매력적이다. 그리고 작가는 “일상에서 평면으로 존재하는 유리로 만들어진 입체” 홍유영 작가 인터뷰, 2023년 11월 4일. 라는 또 하나의 이중성을 중첩한다. 그래서일까. 홍유영의 유리 조각은 한눈에 파악되길 거부함에도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잔상이 오래 남는 풍경이다. 일방적 점유가 아닌 관계 맺음은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예민한 동시에 평온한 균형이다. 서로의 모서리를 지지대 삼아 서 있는 유리 조각들은 열린 상태를 지향한다. 조각의 안과 밖은 한 번도 단절된 적이 없었다. 관객은 조심스레 조각의 공간을 느낀다. 공간의 조각을 마주한다. 열려 있음은 유동적인 만큼 불안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만큼 조각, 예술 그리고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장받는다. 기하학적 단위, 즉 넓이나 부피로서의 공간은 측량할 수 있는 분명함을 갖는다. 그러나 공간의 의미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여지를 의미한다. 홍유영의 작품은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투명하고 하얀 상태에 가깝다. 그러고 보니 작가가 2005년부터 선보였던 하얀 오브제가 점차 공간으로 확장된 것-<Fragmented Space>(2009)-도 더욱 유연한 공간(감)을 위한 것이었다. 흰색에는 무엇이든 왜곡 없이 더할 수 있다.


모순적이지만, 스스로 돋보이길 원하지 않는 홍유영의 유리 조각은 시각적이다. 그리고 아름답다. 그 실루엣, 겹침과 만남은 매우 치밀하고 예리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결과물은 구체적인 형상 못지않게 유리라는 물질 자체에 집중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물체가 눈에 보이는 사물의 외부 형태라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물의 내부에서 움직이며 끝없이 새로운 형태를 구성, 생산하는 질료가 물질이다. 물질은 형상을 결정짓는 본질이다. 그것은 유동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열려 있다. 이런 이유로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물질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물질이 하나의 형상을 만드는 과정, 형태를 미리 규정하는 어떤 틀도 갖지 않는 이 과정이 바로 창조이기 때문이다. 또한 상상력이 여기에 동참할 때 물질적 상상력에 도달할 수 있다. 물질적 상상력은 이미지를 제공해주는 대상을 형태가 아닌 물질로 파악한다. 그리고 물질적 이미지는 물질적 상상력이 만드는데, 같은 물질이어도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른 속성의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이런 이유로 물질적 이미지는 정신적 이미지이다.


분명 <Negative Landscape>에는 눈에 맺힌 이미지의 대상을 형태가 아닌 물질성에 기반해 발전시키는 물질적 상상력이 발휘되었다. “만상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의지는 “질료와 결부된 물질적 이미지들에 그토록 많은 가치들을 부여한다.” 그것이 비록 단번에 시선을 끌지 않고, 즉각적으로 연상 작용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홍유영의 유리 조각이 전하는 물질적 이미지는 느릿하고 여유 있게 나타난다. 대상의 물질성에 주목하게 되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세상을 만날 수 있다.


한편 “내부에 공간을 품고 있는 아주 얇은 입체물인 2.4mm 두께의 스테인리스 튜브(Stainless tubes)를 연결해 유기적인 형태를 만든” 또 다른 <Negative Landscape>는 유연한 공간에 대한 작가적 실험을 한층 기교적으로 보여준다. 홍유영의 유리 조각이 그렇듯 스테인리스 튜브 하나가 삐끗하면 모든 균형이 바스러질 것 같은 구조물은 여유로운 긴장감을 전한다. 스스로 공간을 포함하고 공간에 놓임으로써 자기 자신보다 공간 그 자체를 드러내는 입체물이다. 이보다 더 담백할 수 없는 재료의 사용이지만 홍유영의 어떤 작품보다 공간과 물질에 대한 상상력을 작동시킨다. 운동성이나 착시 효과가 없음에도 이내 움직일 것 같은 인상은 물질과 공간, 그 안에 머무는 의식의 유동성을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공간을 부유하는 작품에서는 심지어 알 수 없는 리듬감마저 느껴지는데, 리듬은 생명의 역동성과 정신적 활동의 역동성을 위한 기반이다. 어떤 하나의 “질료를 사랑하는 방식”, 그것의 “특질을 예찬하는 방식은” “우리 전 존재의 반응을 드러낸다. 상상된 물질적 특질은 그 특질을 부여하는 주체로서의 우리 자신을 드러낸다.” 그리고 상상력은 모든 것을 포괄하며 “지각된 물질적 특질들의 장을 초월”한다.


[위상들]에 전시된 작품을 제작하며 작가는 그 재료가 유리이든 금속이든 인위적으로 색을 입히지 않았다. 빛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재료인 유리와 금속의 물질성을 살리고, 상징으로 기능할 수도 있는 특정한 색에 의해 한정됨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자연히 홍유영의 작업은 빛을 머금는다. 빛의 작용으로 작품이 모습을 드러내고 감추는 상황은 역으로 작품과의 관계 속에서 빛이 모습을 드러내고 감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쩌면 작가는 가장 비물질적인 빛을 표현하기 위해 유리와 금속의 물질성을 탐구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다른 재료가 그렇듯 빛의 성질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에는 정말 아름다운 이미지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빛 역시 투명성을 소유하기 때문에 중첩된 여러 겹을 모두 인지할 수 있고, 한정과는 거리가 있어서 다양하고 불명확하다. 그만큼 열린 상태이고 관계가 중요하다.


<Negative Landscape>에서는 재료도, 작품도, 공간도 그리고 빛마저도 서로 연이어 관계 맺고 “유연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감상자의 합류로 정점에 달한다. 관람객의 위치와 시선에 의한 작품, 공간, 빛의 변화는 무엇보다 중요한 경우의 수이다. 특히 함축적인 시와 같은 홍유영의 작품에서는 특정한 감상자의 눈에 맺힌 이미지, 감상자가 경험하는 물질성, 상상력을 통한 주관화가 중요하다. 공간은 관람객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따라 변화한다. 공간은 객관적일 수 없다. 그것은 경험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예측한 것 이상으로 무수한 층과 연결망이 겹친다. 작가는 자기의 작업이 “직접적으로 설명해주거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작품을 경험하며 상상하길 원할 뿐이다” 의미 생성은 독립된 작품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세계 속 한 명의 응시에서 시작된, 작가의 주관성을 담아낸 오브제는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소유한 작품이 되어 특정한 공간에 놓였다. 그곳에서 관계 맺고 감상자에 의해 또다시 새로운, 주관적이고 특별한 의미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하나의 대상에 그것의 시적 공간을 준다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공간을 그것에 준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가진 “내밀한 공간의 팽창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대지 그리고 휴식의 몽상』, 정영란(역), ㈜문학동네, 2019, p. 18.
홍유영 작가 인터뷰, 2023년 11월 4일.
가스통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곽광수(역), 동문선, 2003, p. 80, p. 108.
이-푸 투안, 『공간과 장소』, 구동회, 심승희(역), 도서출판 대윤, 2011, p. 89.
강성중, 「바슐라르의 물질적 상상력과 디자인 창의성 연구」, 『한국디자인포럼』, Vol. 31, 2011, pp. 384-385. ; 오정빈, 김동진, 「바슐라르의 상상력이론으로 본 현대건축에서의 주관적 이미지 발생구조 연구」, 『한국실내디자인학회논문집』, 제30권 6호, 2021, p. 145.
가스통 바슐라르, 2019, p. 19.
홍명희, 『상상력과 가스통 바슐라르』, ㈜살림출판사, 2018, p. 33.
홍유영 작가 인터뷰, 2023년 11월 4일.
홍명희, 「바슐라르의 리듬 개념」, 『프랑스문화예술연구』 제47집, 2014, p. 512.
가스통 바슐라르, 2019, p. 97.
홍유영 작가 인터뷰, 2023년 11월 4일.
가스통 바슐라르, 2003, p.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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