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chrony - 홍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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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홍유영
“아주머니의 방이었던, 길 쪽으로 난 오래된 회색 집이 무대장치처럼 다가와서는 우리 부모님을 위해 뒤편에 지은 정원 쪽 작은 별채로 이어졌다. (내가 지금까지 떠올린 것은 단지 그 잘린 벽면이었다.) 그리고 그 집과 더불어 온 온갖 날씨의, 아침부터 저녁때까지의 마을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김희영 옮김, 민음사, 2012(원사: 1913), p.91]
프랑스 작가인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In Search of Lost Time)>(1913)에서 나레이터는 어머니가 준 생자크라는 조가비 모양의 프티트 마들렌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여러 번에 걸쳐 먹으면서 그 맛과 향기에 과거의 콩브레에서의 기억들을 차츰 떠올리게 된다. 감각과 사고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그 대상이 갖고있는 흐릿한 실체를 끄집어내려 한동안 몸부림을 친다. 마치 “오랫동안 영혼처럼 살아남아 다른 모든 것의 폐허 위에서 회상하고 기다리고 희망하며, 거의 만질 수 없는 미세한 물방울 위에서 추억의 거대한 건축물“ 찾아가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사라져 가는 감각을 붙잡으며 그것이 의식의 표면에 이를 때까지 어둡고 불분명한 긴 알 수 없는 상태를 계속해서 지나가면서 텍스트에서의 시간은 순간 과거의 한 시점으로 흘러가서 레오니 아주머니가 살던 방을 지나 마을의 모습 그리고 콩브레 근방의 곳곳이 펼쳐진다. 프루스트는 서술에 있어서 짧은 시간을 아주 길게 늘이기도 하고 긴 시간을 짧게 넘어가기도 한다. 오래전 과거 시점과 현재의 시점의 서술에 있어서 그 시간의 길이가 다르다. 또한 사건이 지속되는 시간의 길이와 그 길이를 통해서 사건 또는 대상의 드러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특히 스토리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내용들 보다 서술자의 관점이 부각되면서 서술자의 관점이 투영된 사물과 인물 그리고 사건의 이야기가 확대되거나 요약 또는 생략 되면서 텍스트 안에서 다양한 층위로 드러난다. 지속되는 시간의 길이도 다르지만 프티트 마들렌이라는 오브제를 통해서 서술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적 순서를 뒤바꾸기도 한다. 즉 어느 순간 갑자기 소환되는 여러 인물들과 프랑스 콩브레 지역과 근방, 마을과 건축물과 정원 등의 특정 장소들과 다양한 사물들은 현재의 시점에서 기억의 파편들이 표면으로 올라와 확장되고 늘어나고 변형된다. 텍스트에 나타나는 시간성은 이러한 변화에 개입한다. 이것은 통시적(diachronic)이며 일련의 역사적(historic) 흐름 안에서의 시간성 이라기 보다는 분열적이지만 순환적 특성을 띄고 있다. 스토리 안에서 일어나는 연속적인 사건들은 분열적인 시간성 안에서 대립되고 반복되고 순환되는 여러가지의 관계들을 만들어 낸다.
스페이스몸 미술관의 《Anachrony》에서는 점차 보이지 않고 점차 사라져가는 주거 공간을 중심으로 감각과 생각의 흐름을 따라 올라가 마침내 구체적으로 형상화되는 또다른 이야기들을 펼쳐본다. 작가가 태어나고 최근까지 살던 주거지 이자 현재는 재건축으로 철거가 진행 중인 서초구 반포동의 50년 가까이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서 철거가 시작되기 전부터 오가며 수집한 폐기된 사물 또는 건축물 파편들을 연속적 상태로 끌어내 끊임없이 변형하는 또다른 실존적 형상을 만들어낸다. 한때 어느 누구의 삶과 함께 지속되었고 다양한 시간이 축적된 사물들과 공간들의 사라져가는 찰나를 붙잡아 그 시간의 틈새를 길게 늘여 본다. 전시장 입구를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한쪽 벽면을 따라 길게 설치된 (2022)은 현재 철거가 진행중인 서울 반포의 한 아파트 철거 현장에서 수집한 건축공간의 파편들을 재구축한 작업이다. 건축물의 파편들을 수집할 당시 현장은 건물을 부수는 단계는 아니고 실내 주거공간의 인테리어들을 철거하는 단계라서 아파트 건물 외부에는 건축물의 벗겨진 내부 공간들이 힘없이 널브러져 산처럼 쌓여있었다. 이 작업은 한때 오래된 아파트 실내 공간에서 다른 공간 구조를 이루고 있었던 건축 공간의 부분들을 옮겨와 다른 질서로 연결시키면서 연속적으로 늘어놓는다. 이 껍질 같은 공간의 표면을 모아서 수직이 아닌 수평적으로 재구축하고 이를 또다시 전시장 벽면 위에 수평적으로 설치하여 전시장 벽면 공간을 연장시킨다. 이렇게 늘어난 공간들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913)에서 레오니 아주머니와 프랑수아즈가 수다를 떠는 사이 부모님과 함께 들른 콩브레 성당의 아름다움을 무려 열다섯 페이지로 묘사한 장면들을 떠올리게 된다. 한 장소나 사물 등 감각을 통해 만들어진 특정 대상에 대한 장면들은 기억 속에 저장되는데 이러한 기억들과 생각들은 머릿속에 보관될 때 있는 그대로 보관되기 보다 변형된다. 그리고 그것을 현재 시점에 찾아서 다시 꺼내어 볼 때 또 한번의 변형 과정을 거치며 재생산 된다. 프루스트는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이 주변의 사물이나 자연 또는 공간에 갇혀 있고 “그 영혼은 전율하고 우리를 부르며 우리가 그것을 알아보는 순간 마법이 풀린다”고 말한다. 어쩌면 대상의 존재를 인식하는 인간의 사고, 지각과 감각하는 것이 대상의 비물질적 영역을 만드는 하나의 마법 같은 과정이라고 한다면 이 비물질적 영역은 대상을 지각 또는 감각한 시간과 그것을 사유 또는 상상하는 시간의 간극 사이에서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대상을 사유하는 물리적인 시간의 길이와 그 깊이가 반드시 상대적이지는 않겠으나 이 둘 사이에 어떠한 정해진 절대적인 법칙도 없다. 다른 말로 대상의 비물질적 형태는 사유하는 방식에 따라서 계속 변화하고 이는 다시 물질 위에 보이지 않았던 다양한 색의 껍질이 층위를 이루며 켜켜이 덮이게 한다.
“과거는 우리 지성의 영역 밖에, 그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우리가 전혀 생각도 해 보지 못한 어떤 물질적 대상 안에 (또는 그 대상이 우리에게 주는 감각 안에) 숨어 있다. 이러한 대상을 우리가 죽기 전에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우연에 달렸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김희영 옮김, 민음사, 2012(원사: 1913), p.86]
낮은 높이의 커다란 플랫폼 위에 만들어진 (2022)은 재건축 현장에서 수집한 다양한 오브제들과 이를 공간적 지표로 삼은 복잡한 선적 공간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과거의 한 공간의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었던 사물들은 현재 시점에 소환되어 전시된 공간에서 또 다른 공간을 만들며 새로운 서사를 만든다. 하루 종일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과 그 시간을 타고 함께 움직이는 의식의 흐름 안에 있다 보면 지각하는 대상의 실체와 깊이를 가늠하고자 하는 갈증을 느끼게 된다. 지나온 횡적인 시간과 그 횡적인 시간을 이루는 수많은 시간들의 찰나들은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종적으로 확장시키는 지에 따라 그 대상의 보이지 않는 영역이 결정된다. 프루스트는 텍스트에서 불면증의 시간이 “잃어버린 시간을 풍요롭고 창조적인 시간으로 바꾸는 것”으로 묘사한다. 장소나 공간 또는 사물은 만들어지는데 그 만들어지는 것은 그것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대상 자체에 있는 특성을 얼마나 늘어뜨릴 수 있는지 어떻게 늘어뜨리는 지에 따라 대상의 지각의 범위와 그 구체적인 형상이 결정된다. 불면증은 이러한 생산적인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의 틈새 또는 파열하는 지점의 의미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 사이의 공백의 시공간을 오가며 대상을 만들고 확장시킬 수 있는 불균질적인 시간적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프랑스 문학 이론가인 제라르 주네트(Gerard Genette)의 <서사담론(Narrative Discourse: An Essay in Method)>(1973)에서는 이러한 분열적 특성의 시간성을 아나크로니(Anachrony)라고 규명한다. 소설에서 스토리를 시간적 관점에서 볼 때 이야기는 사건들이 연대순(chronological)으로 정리되지만, 서술(narrative)에서는 사건들이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다. 아나크로니는 서술자가 이야기를 전개하는 특정 시간적 질서를 말하는데 이는 서술자에 의해 다르게 조정되고 배치된 시간을 이야기 한다. 즉 아나크로니는 연대기적 시간 질서를 벗어난 스토리와 플롯 사이의 존재하는 시간적 불규칙성을 말한다. 이를 통해 장소 또는 사물 등 대상을 사유하는 방식과 유사성을 발견한다. 이러한 시간적 불규칙성은 전시장 한쪽 벽면과 한가운데 놓여진 같은 타이틀의 작업인 (2022)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벽면에 설치된 네 개의 사각 스텐레스 구조는 두 면이 각기 다른 길이로 잘린 형태로 그 경계 안쪽으로는 잘려진 녹색 유리 파편들이 다양한 형태와 층위로 채워져 있다. 다른 장소에서 다른 시간과 다른 기억들이 축적된 각기 다른 유리 파편들은 빛에 반응하며 공간에 연속된 그림자를 만든다. 바닥에 설치된 같은 제목의 다른 작업은 스텐레스 베이스의 가느다랗게 길게 파인 홈 안에 다양한 모양의 수집된 여러 장의 유리 파편들이 수직으로 꽂혀 있는데 각각의 투명한 유리판의 불규칙적으로 깨어진 라인들이 겹겹이 쌓이면서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공간구조와 움직임을 드러낸다. 한데 모인 유리판들은 어떤 각도에서는 완전히 겹치게 되어 하나의 이미지로 보여지기도 하는데 이렇게 움직임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시공간적 불규칙성은 순간적으로 만들어지는 포착의 시간에 대상의 형상을 늘이거나 줄이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