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aterial Matter - 홍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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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의 표상/대표와 그것의 충실성에 대한 이중의 의심을 살펴보고 나면 우리는 사물들의 의회에 대해 정의하게 될 것이다. 그 경계선 안에서 집합체의 연속성이 재조정 될 것이다.”[1]
이길이구 갤러리에서 개최되는 홍유영의 개인전 《(Im)material Matter》에서는 설치, 조각 등 다양한 재료와 시각적 언어를 통해 보여줬던 작업들을 확장한 최근 작품들을 선보인다. 작가는 자본의 논리 안에서 생산되는 공간과 사물이 만들어내는 변화들을 관찰하면서 건축, 사물 또는 장소 해체의 순간에 우리가 지각하는 그리고 지각하지 못하는 지점들을 주목하고 그러한 것들을 물질적 또는 비물질적 영역으로 새롭게 확장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다양한 해석을 통해서 대상이 갖고있는 물질적 특징을 극대화시켜 공간과 사물, 물질과 개념, 도시와 공간, 인간과 사회 등의 복잡한 관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조망한다.
객체 즉 대상을 지각하고 인식하는데 있어서 물성 또는 물질적 특징은 중요하고 물질에 대한 담론은 예술과 철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지속되어왔다.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의 작품에 있어서 순수한 물질성의 강조와 1960년대 미니멀리즘 그리고 마이클 프리드(Micheal Fried)의 연극성에 기반한 물질성의 이해를 거쳐 주체성의 문제로 확대된 신유물론(Neo-Materialism)까지 현대미술에서는 물질성이라는 것이 단순히 작품을 구성하는 재료로서 인식되기 보다는 작품 안에서 여러 요소들을 적용시키고 확장시키면서 다양한 형식으로 존재하게 된다. 《(Im)material Matter》에서는 주변의 공간과 사물의 변화를 관찰하면서 물질과 비물질의 가변적이며 연속적인 관계성을 입체 작업을 통해 공간적 관점에서 확장시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해 본다.
단순한 의인화에 의존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고 사물이나 공간이 생산되고 존재하고 작동되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물질성과 비물질성과의 관계성을 통한 대상에 대한 탐구는 최근 작품들에서도 보여진다. 전시장의 벽에 설치된 <각이진 유리 (Angled Glass)>(2024)는 같은 제목의 2023년 유리 설치작업을 확장시킨 작업이다. 2023년 리각미술관의 개인전에 설치되었던 작업은 서울의 한 철거지역에서 수집한 여러 유리판들을 작게 쪼개서 바닥에 사각형의 형태로 가운데는 높이가 점점 올라가는 방식으로 설치가 되었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벽이라는 공간으로 작품의 위치를 옮기고 유리가 올라간 바닥의 재료는 스텐레스 스틸로 바뀌었다. 스텐레스 스틸 표면 위에는 작은 도로용 유리알과 철거현장에서 수집한 유리들을 작은 크기로 만든 파편들이 흩뿌려져 빛이 닿는 곳마다 반짝이며 그 형상을 짧게 드러낸다. <네거티브 랜드스케이프(Negative Landscape)>(2024)는 2.4mm 두께의 아주 가는 스텐레스 사각튜브를 연결해서 공간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유기적인 선적 구조를 만든다. 2023년 작업과 달리 선적인 구조들은 전시장 바닥과 벽면 등 전시장의 표면적 공간에도 설치가 된다. 가는 스텐레스 사각큐브들은 전시장의 조명과 지각하는 방향에 반응하여 그 모습을 확연히 드러내기도 하고 흐릿한 채로 공간 속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같은 제목의 또다른 작업인 <네거티브 랜드스케이프(Negative Landscape)>(2024)는 2mm 지름의 여러 스텐레스 강선을 용접해서 상하로 길게 메단 작업인데 스텐레스 튜브 작업보다 더 가늘어진 선들의 형태는 공간 속에서 유연한 흐름을 만들며 지각하는 찰나에 묶여진 조건들에 집중하게 된다. 『생동하는 물질: 사물에 대한 정치생태학』에서 제인 베넷은 어느 평범한 아침 특정 순간에 블티모어 특정 장소 앞에서 조우한 사물들과 그것들 둘러싼 찰나의 여러 조건들 예를 들어 검은 장갑에 비친 햇빛, 때마침 나타난 쥐, 그 옆의 병마개, 나뭇가지 등의 배치의 관계 속에서 객체들은 사물로서 실체를 드러낸다고 말한다. 또다른 무엇인가를 재현하려 하지 않고 물질을 물질 그 자체로 보여주며 사물을 사물로 만들고 드러내고 결정하는 것에는 비물질적 요소들의 개입과 작동이 중요하다. 빛, 공기의 흐름 또는 지각하는 위치나 방식 등 시공간적 조건을 포함하여 구조, 환경, 맥락 등이 대상의 특이성을 결정하는데 상당히 중요해지나 그러한 조건들 즉 다양한 물질성들이 드러내는 다른 힘들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도 동시에 중요해 진다.
절대적인 것이 확장되어 기존의 맥락과의 관계에서 벗어나려는 성향은 최근 오브제 작업에서도 발견된다. 수집한 오브제 가구들을 절단하여 만든 <사물들(Things)>(2024)이나 전시장 바닥에 설치된 절단된 가구 사이에 얇고 투명한 유리가 끼워져 직각으로 세워진 <사물들(Things)>(2024)은 오래전부터 수행 해왔던 가구 작업을 이번 전시에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 작업이다. 이전 작업들이 각기 다른 오브제에서 온 조각들을 하나로 연결해서 형태를 “하이브리드적”으로 확장했다면 이번 작업에서는 하나의 오브제에 비슷한 목재나 투명한 재료로 만든 새로운 구조를 연결하여 기존의 오브제가 갖고있는 공간을 “펼쳐놓는다”. 기하학적 형태 또는 반복적인 형태로 오브제의 구조를 변형 확장시키는데 이러한 작업 방식은 대상이 갖고 있던 물질적, 개념적 특징을 느슨하게 만들며 또다른 형상이 되어가는게 아닌 대상을 인식의 범주에서 벗어나게 하여 독립적 순간을 만들게 한다. 제인 베넷이 “객체는 사물이 주체에게 나타나는 방식”이고 “반면 사물은 객체가 우리의 피상적인 지식을 뚫고 나오는, 절대로 객체화 될 수 없는 깊이의 형이상학이라 말했던 것의 필요성을 느낄 때 드러난다”고 말한 것처럼 어쩌면 인간의 활동 조짐이 넘치는 도시공간 안에서 조우하게되는 사물과 공간은 “구조를 만들어내는 광범위한 여러 대안을 자기 안에 품고”있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겠다.[2]
전시장 안쪽에 설치된 <사물들(Things)> (2024)은 스텐레스 평철로 만들어졌으며 바닥에 바퀴가 달려 이동이 가능한 세 개의 금속 구조물이 접히도록 경첩으로 서로 연결이 되어 있고 그 안에 철거 중인 특정 장소에서 수집한 오브제들이 함께 배열되고 설치되어 있다. 오래된 공장이나 건물을 열고 닫는 용도로 드리웠을 법한 빛 바랜 투명 천막과 선적 구조 위에 불안하게 쌓여있는 유리 소재의 투명한 오브제들은 작품의 구조 안에서 내재적 행위성을 드러낸다.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사물이 존재하는 것에는 물질성과 비물질성의 동등한 관계가 중요하고 특히 그 관계는 다양한 물질이 드러내는 서로 다른 힘들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배열하는지에 따라서 달라진다. 즉 다양한 힘들의 연합을 형성하는 중재의 과정, 상호적인 장 또는 구조는 브뤼노 라투르가 언급한 중간자(intermediary)보다는 매개자(mediator)에 가깝다. 지각되는 것(perceived)과 지각하는 것(perceiving)의 사이에서 자신도 변하는 중재의 과정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완벽하고 포괄적인 번역에 저항 하겠지만 이러한 중재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개별적인 번역이 가능해진다.
흐릿해지는 물질적 경계 끝에서 새롭게 드러나는 또다른 비가시적인 영역은 사물과 공간이 갖고있는 물질적 특징과 공간적 특수성을 새롭게 교차시켜 물질과 공간에 대한 또다른 사유를 확장시킨다. 특히 도시공간에서는 인간과 비인간의 확장되고 변화하는 물성을 주목하게 되는데 사물과 공간의 배치, 물질적 연합체를 통해 물질과 비물질적 네트워크가 관계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공간과 사물 또는 물질의 안팎에서 현존하는 질서와 관계들을 무효화하거나 차감함으로서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인간과 비인간이 교차되는 지점, 흐트러진 경계의 사이에서 내부와 외부가 없는 사이 안의 유연하고 동적인 공간 속에서 서로 다른 물질이 경계를 벗어나 또다른 관계와 질서를 마주하면서 구축된 인식적 구조의 해체를 경험하게 한다.
[1] 브뤼노 라투르,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홍철기(역), 갈무리, 2009, p. 355.
[2] 제인 베넷, 『생동하는 물질: 사물에 대한 정치생태학』, 문성재(역), 현실문화, 2020, p. 36-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