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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의 표상/대표와
그것의 충실성에 대한 이중의 의심을 살펴보고 나면 우리는 사물들의 의회에 대해 정의하게 될 것이다. 그
경계선 안에서 집합체의 연속성이 재조정 될 것이다.”[1] 이길이구 갤러리에서 개최되는 홍유영의 개인전 《(Im)material Matter》에서는 설치, 조각 등 다양한 재료와
시각적 언어를 통해 보여줬던 작업들을 확장한 최근 작품들을 선보인다. 작가는 자본의 논리 안에서 생산되는
공간과 사물이 만들어내는 변화들을 관찰하면서 건축, 사물 또는 장소 해체의 순간에 우리가 지각하는 그리고
지각하지 못하는 지점들을 주목하고 그러한 것들을 물질적 또는 비물질적 영역으로 새롭게 확장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다양한 해석을 통해서 대상이 갖고있는 물질적 특징을 극대화시켜 공간과 사물, 물질과 개념, 도시와 공간, 인간과 사회 등의 복잡한 관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조망한다. 객체 즉 대상을 지각하고 인식하는데 있어서 물성 또는 물질적 특징은
중요하고 물질에 대한 담론은 예술과 철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지속되어왔다.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의 작품에 있어서 순수한 물질성의 강조와
1960년대 미니멀리즘 그리고 마이클 프리드(Micheal Fried)의 연극성에 기반한
물질성의 이해를 거쳐 주체성의 문제로 확대된 신유물론(Neo-Materialism)까지 현대미술에서는
물질성이라는 것이 단순히 작품을 구성하는 재료로서 인식되기 보다는 작품 안에서 여러 요소들을 적용시키고 확장시키면서 다양한 형식으로 존재하게 된다. 《(Im)material Matter》에서는 주변의 공간과 사물의
변화를 관찰하면서 물질과 비물질의 가변적이며 연속적인 관계성을 입체 작업을 통해 공간적 관점에서 확장시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해 본다. 단순한 의인화에 의존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고 사물이나 공간이 생산되고
존재하고 작동되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물질성과 비물질성과의 관계성을 통한 대상에
대한 탐구는 최근 작품들에서도 보여진다. 전시장의 벽에 설치된
<각이진 유리 (Angled Glass)>(2024)는 같은 제목의 2023년 유리 설치작업을 확장시킨 작업이다. 2023년 리각미술관의
개인전에 설치되었던 작업은 서울의 한 철거지역에서 수집한 여러 유리판들을 작게 쪼개서 바닥에 사각형의 형태로 가운데는 높이가 점점 올라가는 방식으로
설치가 되었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벽이라는 공간으로 작품의 위치를 옮기고 유리가 올라간 바닥의 재료는 스텐레스 스틸로 바뀌었다. 스텐레스 스틸 표면 위에는 작은 도로용 유리알과 철거현장에서 수집한 유리들을 작은 크기로 만든 파편들이 흩뿌려져
빛이 닿는 곳마다 반짝이며 그 형상을 짧게 드러낸다. <네거티브 랜드스케이프(Negative Landscape)>(2024)는 2.4mm 두께의
아주 가는 스텐레스 사각튜브를 연결해서 공간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유기적인 선적 구조를 만든다. 2023년
작업과 달리 선적인 구조들은 전시장 바닥과 벽면 등 전시장의 표면적 공간에도 설치가 된다. 가는 스텐레스
사각큐브들은 전시장의 조명과 지각하는 방향에 반응하여 그 모습을 확연히 드러내기도 하고 흐릿한 채로 공간 속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같은 제목의 또다른 작업인 <네거티브 랜드스케이프(Negative Landscape)>(2024)는 2mm 지름의
여러 스텐레스 강선을 용접해서 상하로 길게 메단 작업인데 스텐레스 튜브 작업보다 더 가늘어진 선들의 형태는 공간 속에서 유연한 흐름을 만들며 지각하는
찰나에 묶여진 조건들에 집중하게 된다. 『생동하는 물질: 사물에
대한 정치생태학』에서 제인 베넷은 어느 평범한 아침 특정 순간에 블티모어 특정 장소 앞에서 조우한 사물들과 그것들 둘러싼 찰나의 여러 조건들 예를
들어 검은 장갑에 비친 햇빛, 때마침 나타난 쥐, 그 옆의
병마개, 나뭇가지 등의 배치의 관계 속에서 객체들은 사물로서 실체를 드러낸다고 말한다. 또다른 무엇인가를 재현하려 하지 않고 물질을 물질 그 자체로 보여주며 사물을 사물로 만들고 드러내고 결정하는
것에는 비물질적 요소들의 개입과 작동이 중요하다. 빛, 공기의
흐름 또는 지각하는 위치나 방식 등 시공간적 조건을 포함하여 구조, 환경, 맥락 등이 대상의 특이성을 결정하는데 상당히 중요해지나 그러한 조건들 즉 다양한 물질성들이 드러내는 다른 힘들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도 동시에 중요해 진다. 절대적인 것이 확장되어 기존의 맥락과의 관계에서 벗어나려는 성향은
최근 오브제 작업에서도 발견된다. 수집한 오브제 가구들을 절단하여 만든 <사물들(Things)>(2024)이나 전시장 바닥에 설치된
절단된 가구 사이에 얇고 투명한 유리가 끼워져 직각으로 세워진 <사물들(Things)>(2024)은 오래전부터 수행 해왔던 가구 작업을 이번 전시에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
작업이다. 이전 작업들이 각기 다른 오브제에서 온 조각들을 하나로 연결해서 형태를 “하이브리드적”으로 확장했다면 이번 작업에서는 하나의 오브제에 비슷한
목재나 투명한 재료로 만든 새로운 구조를 연결하여 기존의 오브제가 갖고있는 공간을 “펼쳐놓는다”. 기하학적 형태 또는 반복적인 형태로 오브제의 구조를 변형 확장시키는데 이러한 작업 방식은 대상이 갖고 있던
물질적, 개념적 특징을 느슨하게 만들며 또다른 형상이 되어가는게 아닌 대상을 인식의 범주에서 벗어나게
하여 독립적 순간을 만들게 한다. 제인 베넷이 “객체는 사물이
주체에게 나타나는 방식”이고 “반면 사물은 객체가 우리의
피상적인 지식을 뚫고 나오는, 절대로 객체화 될 수 없는 깊이의 형이상학이라 말했던 것의 필요성을 느낄
때 드러난다”고 말한 것처럼 어쩌면 인간의 활동 조짐이 넘치는 도시공간 안에서 조우하게되는 사물과 공간은 “구조를 만들어내는 광범위한 여러 대안을 자기 안에 품고”있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겠다.[2] 전시장 안쪽에 설치된 <사물들(Things)> (2024)은 스텐레스 평철로 만들어졌으며 바닥에 바퀴가 달려 이동이 가능한 세 개의 금속
구조물이 접히도록 경첩으로 서로 연결이 되어 있고 그 안에 철거 중인 특정 장소에서 수집한 오브제들이 함께 배열되고 설치되어 있다. 오래된 공장이나 건물을 열고 닫는 용도로 드리웠을 법한 빛 바랜 투명 천막과 선적 구조 위에 불안하게 쌓여있는
유리 소재의 투명한 오브제들은 작품의 구조 안에서 내재적 행위성을 드러낸다.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사물이 존재하는 것에는 물질성과 비물질성의 동등한 관계가 중요하고 특히 그 관계는 다양한 물질이 드러내는 서로 다른 힘들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배열하는지에 따라서 달라진다. 즉 다양한 힘들의 연합을 형성하는 중재의 과정, 상호적인 장 또는 구조는 브뤼노 라투르가 언급한 중간자(intermediary)보다는
매개자(mediator)에 가깝다. 지각되는 것(perceived)과 지각하는 것(perceiving)의 사이에서
자신도 변하는 중재의 과정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완벽하고 포괄적인 번역에 저항 하겠지만 이러한 중재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개별적인 번역이 가능해진다. 흐릿해지는 물질적 경계 끝에서 새롭게 드러나는 또다른 비가시적인
영역은 사물과 공간이 갖고있는 물질적 특징과 공간적 특수성을 새롭게 교차시켜 물질과 공간에 대한 또다른 사유를 확장시킨다. 특히 도시공간에서는 인간과 비인간의 확장되고 변화하는 물성을 주목하게 되는데 사물과 공간의 배치, 물질적 연합체를 통해 물질과 비물질적 네트워크가 관계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공간과
사물 또는 물질의 안팎에서 현존하는 질서와 관계들을 무효화하거나 차감함으로서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인간과
비인간이 교차되는 지점, 흐트러진 경계의 사이에서 내부와 외부가 없는 사이 안의 유연하고 동적인 공간
속에서 서로 다른 물질이 경계를 벗어나 또다른 관계와 질서를 마주하면서 구축된 인식적 구조의 해체를 경험하게 한다. [1] 브뤼노 라투르,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홍철기(역), 갈무리, 2009, p.
355.
[2] 제인 베넷, 『생동하는 물질: 사물에 대한 정치생태학』, 문성재(역), 현실문화, 2020, p. 3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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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young Hong: The Hydrology ProjectCMOA DaecheonghoAugust 4—October 22, 2023Soyeon AhnArt Critic*The Hydrology Project (2023), an exhibition of works by Euyoung Hong, shows the artist’s interest in the relationship between sculpture and “hydrology.” The grey concrete walls, floor and ceiling with steel panels exposed highlight the physical properties of the entire space rather than the imposition of the neutrality of the white cube. This tends to remind viewers of something which is cold and dry, and generates heat while condensing water within its surface, that is, the primal physical properties of a space. The exposure of building materials nudges viewers to a certain origin or extinction of a space despite its artificial characteristics. Such characteristics of the space take the category of Hong’s The Hydrology Project beyond the physical limits, continuing to express the abstract arbitrariness, such as time and space surrounded by emptiness and darkness. It suggestively guides such imaginative time and space where the material elements would be accepted as an entity. The individual works that constitute The Hydrology Project include Negative Landscape (2023), Silver Flow (2023) and The Hydrology Project (2023), a sculptural work with the same title as the exhibition. In these works transparent glass, thin silver wires and other objets are arranged within a gray space with their surfaces transformed as if to disguise themselves. These individual works that share the weak and dim sensibilities of the physical properties maintain a state of visual tension with constituents standing low, hanging, or raised up about half with each supporting the other. The works seem to repeat construction and deconstruction, revealing the defense and protection mechanisms at the same time, transmitting the viewer’s sensibilities between tension and balance, allowing them to dig into their body, thus guiding their eyesight and body to move cautiously and steadily. For some, the works aim at amplifying to the utmost limit our experience of the moment we now face by intermingling the obsessive impulse of our sensibilities to see what is not seen with the anxiety that we might be led to an exceptional appearance of something we cannot now see.*Euyoung Hong has, since the early phase of her career as an artist, been interested in deconstruction of a piece of architecture or place, using for her artistic creation fragments of building materials or other objects found at building sites, exploring their forms and physical properties through her unique aesthetic reconstruction. Discarded glass fragments have been her favorite material since the early days, as shown by her latest Negative Landscape series, which began in 2017 with the same-titled work wherein she placed plate glass fragments on top of each other, layer by layer, on a wheeled wooden board and secured them with elastic bands. In one of her latest works in the series, she created a three-dimensional structure of differently sized glass fragments using a minimum of parts, and erecting it in a space. A series of works she created recently using glass fragments from demolition sites suggest that Ms. Hong has been dedicated to aesthetic exploration not only of the function of the glass that divides, reduces or expands a space but also on its material characteristics connoting the potentiality for transparency, softness, dimness and sharpness.In this exhibition focusing on “the cycle of water,” that is, the mobility of and changes in the phases of the invisible, visitors are guided to the aesthetic ideas and sensibilities of Euyoung Hong as an artist who approaches the cycle of matter metaphorically. The reference to a human figure, which sculpture (even abstract) implicates by nature, can be found in some of her works. Her viewers can often find in the composition and arrangement of specific objets personified choreographic forms reminding us of the actions of the actors performing their roles, while some stimulate our imagination of certain forms just like props on a theater stage. For example, the glass sculptures that appear to be entering the exhibition hall one step earlier than the viewers stand on the floor, combining themselves with sleek metal objets to maintain a balance of physical power. The wires and plates forming the structures are weak in the sense that they cannot stand on their own and accordingly are given a mandate to raise up themselves through combination and arrangement of power between themselves. It reminds one of the act of filling an empty space with invisible material gradually erected in the void, just like a pool created by the rain that has poured down all night long and gradually dries up, leaving behind its condensed form—transparent matter that enigmatically transforms itself. The two sculptural forms hanging between The Hydrology Project appear like clouds due to the description of “the cycle of water” they are connected to. These forms, in the shape of misty bodies that can produce snow and then rain, appear either as shadows corresponding to the form of water lying above and below the surface of the earth, with a void between the two bodies, or images reflected from them. In fact, the structure of thin wires which, with their weak physical properties, constitute Hong’s Negative Landscape series maintains a kind of residue—just like the waste glass fragments a certain negative identity separated from the metal plates. For example, the spiral structure of metal wires was produced as the edge of a metal plate was “peeled” off in a spiral, resulting in long, thin metal wire that is easily bendable. That is why Negative Landscape is basically abstract “debris” that has survived around a certain form and material, guiding viewers to the experience and imagination of visual perception that shuttles between the sphere of the invisible and of the visible via (re)locating what is in the first sphere to the second.To sculptors, the perception of what is negative is accumulated through experiences just like the mother tongue is acquired. Euyoung Hong perceives the fragmentary parts derived from a random whole, while expanding her interest as a sculptor in the category of the invisible. As a sculptor, she tries to “erect” in a space the reality reconstructed in the random physical property and form, transcending the visual experience of an uncertain subject. In addition, the dim, transparent forms that imply a series of movements—just like the movements of power—show a network of sensibilities that orchestrate elaborately the changes in matter and the transition of physical status.*Let’s take a look at a different scene captured by one work in the Negative Landscape series. This one displays a separate, independent space and revives the structure and rhythm of that space, which is closer to a void, with narrow and transparent objets. Euyoung Hong has set up a white wall at the innermost part of the exhibition hall, and created an empty space in a corner where the wall meets the floor. The space has been planned for forms that are so thin and transparent that they are estranged from the visual category instantly as if shrouded in darkness. This space reveals the magic of three-dimensionality by which extremely thin, transparent and obscure objects are erected in a space through the network of power and form. In other words, viewers can witness forms which are not possible in reality standing before them as something that really exists while undergoing a radical change that reverses the physical properties and the status of existence in the physical relationship in which matter is exchanged. Objets such as pebbles and cords discovered around a lake makes up their surface, whose significance is not apprehensible, by spending the time of physical transformation underground, undergo the process of weathering and sedimentation. Euyoung Hong brought these objets to a three-dimensional space of white walls and floor and erected them in forms that reveal themselves in delicate light and shade. These works show that Euyoung Hong is in line with the experiences and insights of many great sculptors in the past century who experimented to a great extent to rediscover new sculptural potentiality. Richard Serra, for example, was inspired by the movements of dancers when he had heavy steel plates lean on each other after being erected on the floor, while Eva Hesse erects hollowed latex structures and hangs materials such as thread, paper and fabric on the ceiling or wall to create a series of three-dimensional volumes. Euyoung Hong’s sculptural experiments seem to be aimed at creating an impossible form in a three-dimensional space. She is particularly keenly interested in the transformations of invisible materials or objects that have undergone the hardship of dismantlement or severe damage and the sculptural space formed out of such uncertain, precarious materials. Meanwhile, The Hydrology Project reminds viewers of the sculptural process through which Euyoung Hong explores the material changes and forms freely crossing the border between the sphere of the invisible and the visible. This work, designed to collect air and change it into water which is, in turn, guided through a series of distillation processes, does not seek to explain the narration about the cycle of water but to attain sculptural perception and understanding of a certain random material or form which exists, in the three-dimensional world, in a state of uncertainty and lack of transparency, extending to the sculptural concept that continued to expand during the last century. The title of this paper, Raising up What Is Transparent and Thin, is related to the sculptural perception. Considering the efforts of modern sculptors who sought to approach “the existence of uncertainty” proven by the reality of three-dimensionality as well as the classical realization of the ideal of sculpture using large, hard and heavy materials marked by comprehensive and clear outlines, the experience we have whenever we face an incomplete reality which presupposes that no one can completely see its whole is connected with the perception and recognition of Negative Landscape presented by Euyoung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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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유영: The Hydrology Project]2023.8.4-10.22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안소연미술비평가*홍유영의 《The Hydrology Project》(2023)는 말 그대로 ‘수문학(Hydrology)’을 참조한 조형적 관계를 가늠하게 한다. 회색 콘크리트와 철제 패널이 노출된 전시 공간의 벽과 바닥과 천장은 화이트큐브의 중립성을 강요하는 대신 공간 전체의 물성을 강조한다. 차갑고 건조하면서도 그 표면 안에 열을 발생시키면서 물을 응축하고 있는, 이를테면 공간의 원초적인 물성 같은 것을 문득문득 환기시킨다. 산업적인 건축 자재의 노출은, 그것의 인공적 특징에도 불구하고 공간의 어떤 기원과 소멸까지도 상상하게 한다. 이러한 공간의 특징은 홍유영의 《The Hydrology Project》의 범주를 물리적 한계 너머로 이끌면서 공허와 흑암에 둘러싸인 태초의 시공간처럼 추상적인 임의성을 지속적으로 나타낸다. 물질의 원소들이 하나의 존재처럼 받아들여질 그러한 상상의 시공간을 암묵적으로 이끄는 셈이다. 이 《The Hydrology Project》를 구성하고 있는 개별적인 작업은 (2023)와 (2023), 그리고 전시 제목과 동명의 기계 장치 (2023)가 있다. 투명한 유리와 은색의 가는 금속 선재, 간혹 어떤 오브제들이 위장하듯 표면을 변형시킨 채 회색 공간 속에 배열되어 있다. 허약하고 흐릿한 물성의 감각을 공유하고 있는 이 개별적인 작업들은, 공간 속에서 낮게 서 있거나 매달려 있거나 서로 지탱하며 반쯤 일으켜 세워진 상태로 시지각적인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방어와 보호를 동시에 드러내면서, 해체와 구축을 반복하듯, 긴장과 균형을 오가는 감각의 미세한 전이가 신체에 파고드는 것 같아, 시선과 몸의 움직임은 신중할 정도로 느리게 작동하게 된다. 이는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보겠다는 강박적인 감각의 충동과 더불어 볼 수 없는 것들이 예외적으로 출현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뒤엉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바로 이 현재의 순간에 대한 경험을 한없이 증폭시켜 놓을 요량인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오래 전부터 건축 혹은 장소의 해체에 관심을 갖고 거기서 발견한 사물이나 건축 자재의 파편들을 작업의 재료로 가져와 사용했던 홍유영은. 이를 가지고 특유의 조형적 재구성의 감각을 드러내는 형태 및 물성 탐구의 면면을 이어왔다. 아마도 폐유리는 그가 꽤 오래 사용한 재료 중 하나일 텐데, 최근까지도 진행 중인 ‘Negative Landscape’ 연작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대략 2017년 바퀴 달린 나무 판 위에 조각 난 유리 판의 파편을 켜켜이 중첩시켜 고무줄로 고정시켜 놓은 로 연결된다. 최근에는 크고 작은 유리 판 조각을 최소한의 부속을 이용해 입체적인 구조물로 재구성하여 공간 속에 세워 놓는 방식의 ‘Negative Landscape’ 연작을 볼 수 있다. 건축 철거 현장에서 발생하는 유리 잔해물을 이용한 일련의 작업에서, 그는 건축적 프레임을 지지체 삼아 공간을 구분하고 축소하고 확장하는 유리의 유연한 기능뿐만 아니라, 투명하고 부드러우면서도 흐릿하고 날카로운 위상 변화를 잠재적으로 함의하고 있는 유리의 질료적 특징을 활용해 조형적 탐구를 수행해 왔던 것 같다. 이번 전시에서는 “물의 순환”이라는 비가시적인 물질의 이동성과 위상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 만큼, 전시 공간 전체에서는 이 물질의 순환 과정을 은유적으로 접근한 작가 특유의 사유와 감각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이 추상이라 할지라도) 조각이 태생적으로 함의하는 인간 형상에 참조는 홍유영의 몇몇 구축물에서도 느껴진다. 무언가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동작처럼 어떤 의인화된 안무가 특정 오브제들의 구성과 배열에서 간간이 목격되고, 어떤 것은 무대 위의 소품처럼 그 이상의 어떤 형태에 대한 상상을 배가시키기도 한다. 이를테면,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우리의 신체 보다 한 걸음 앞서 안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유리 조각들은 매끈한 금속 오브제들과 결합해 물리적인 힘의 균형 상태를 유지한 채 바닥에 서 있다. 선재와 판재의 조건 상 홀로 직립할 수 없는 이 허약한 존재들은 서로의 결합과 힘의 안배를 통해 바닥에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만한 당위를 얻게 됐다. 마치 밤새 내린 비가 움푹 파인 웅덩이에 고여 그 응축된 형태를 땅에 흔적처럼 남긴 채 서서히 허공으로 일으켜 세워져 비가시적인 물질로 허공이라는 공백을 채우게 되는, 이 투명한 물질의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수수께끼 같은 동사적 변형에 관해 환기시키면서 말이다. 를 사이에 두고 매달려 있는 두 개의 조각적 형태는 언뜻 “물의 순환”이라는 서사에 엮여 구름처럼 보이기도 한다. 구름이었다가 눈이 될 수도 있고 비가 될 수도 있고, 그 무엇이든 상관 없지만 허공을 사이에 둔 지표면 위 아래의 물의 형상과 대구를 이루는 그림자 같기도 하고 반사된 이미지 같기도 하다. 사실, 홍유영의 연작을 구성해 온 가늘고 허약한 물성의 선재 구축물은 유리 파편들처럼 일종의 잔해물로서 금속 판재로부터 떨어져 나온 네거티브의 정체성을 갖는다. 예컨대, 나선형 구조로 돌돌 말린 금속 선재의 모양은 금속 판을 깎을 때 떨어져 나온 파편에서 가져온 것이며, 쉽게 구부러질 것처럼 가늘고 긴 금속 선재는 판에서 잘려져 나온 나머지에 해당한다. 그렇기에 는 근본적으로 어떤 형태와 물질 안팎에서 생존한 추상적인 잔해로서, 비가시적 체계 안에 있던 것들을 가시성의 영역에 (재)위치시킴으로써 그 둘 사이를 왕복하는 시지각적 경험과 상상을 이끄는 셈이 된다. 조각가들에게 네거티브에 대한 인식은 모국어처럼 체험적으로 축적된다. 홍유영은 보이지 않는 범주에 대한 조각적 관심을 확장해 오는 가운데, 임의의 전체에서 파생된 파편적인 부분을 네거티브로 지각한다. 그는 불확실한 대상에 대한 시각적 체험을 넘어서서 임의의 물성과 형태로 재구축된 실체를 공간 속에 “일으켜 세우는” 조각적 시도를 감행한다. 게다가 힘의 이동처럼 일련의 움직임을 함의하고 있는 투명하고 흐릿한 형태들은, 질료의 변형과 신체적 위상의 전환을 매우 섬세하게 조율해내는 감각의 네트워크를 보여준다*별도의 독립적인 공간을 마련해 가늘고 투명한 오브제들로 공백에 가까운 공간의 구조와 리듬을 되살려 놓은 ‘Negative Landscape’ 연작의 또 다른 장면을 보자. 홍유영은 전시 공간 가장 안쪽에 흰 색 가벽을 세워 임의의 벽과 바닥 면이 만나는 텅 빈 모서리를 설계했다. 이는 어둠에 파묻히듯 금새 시각적 범주에서 소외될 만큼 투명하고 가는 형태들을 위한 공간으로 마련됐다. 이 공간은 매우 가늘고 투명하고 흐릿한 사물들이 각자의 힘과 형태의 네트워크를 통해 공간 속에 일으켜 세워지는 삼차원의 마술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형태가 각각의 질료들 가운데 주고 받은 물리적인 관계 안에서 물성의 변화와 현존의 위상을 뒤바꿔 놓을 만큼 급진적인 전환을 겪으면서 우리 앞에 실존하는 무엇으로 서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호숫가 주변에서 파내듯 발견해 온 돌멩이와 끈 같은 오브제들은 이미 풍화와 퇴적 등의 물리적 변형의 시간을 땅 속에서 보내오면서, 우리가 알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표면을 제 스스로 만들어냈다. 홍유영은 그것을 흰 색 벽과 바닥이 구축하고 있는 삼차원의 공간에 가져다가 그 미세한 명암 속에 일으켜 세우듯 형태의 자리를 매만졌다. 이는 이미 지난 세기의 많은 조각가들이 조각적 가능성을 재창안해 내기 위해 실험했던 수많은 경험과 통찰의 연장선에 있다. 리처드 세라가 무용수들의 안무 동작을 참조하여 육중한 철판을 서로 기대어 바닥 위에 일으켜 세웠던 것처럼, 에바 헤세가 부드러운 라텍스를 캐스팅 기법으로 속을 비워내 공간 속에 세우거나 실과 종이, 섬유 등의 질료를 천장과 벽에 매달아 일련의 삼차원적 양감을 확보하게 했던 것처럼, 홍유영은 불가능한 형태를 삼차원의 공간에 현존하게 하기 위한 조각적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그는 비가시적인 물질이나 해체와 파괴의 재난을 겪은 질료의 변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이러한 불확실하고 위태로운 물질의 형태가 어떤 조각적 공간을 구축해낼 수 있을까 하는 감각의 전환을 섬세하게 잘 다룬다. 한편, 'The Hydrology Project'는 그가 비가시성과 가시성을 오가며 물질과 형태의 변환에 대해 탐구해 온 조각적 절차들을 재차 환기시킨다. 실제 공간의 공기를 채집해 장치 안에 모은 후 그것을 물로 변환시켜 일련의 증류 과정을 거치게 하는 이 장치는, 단지 물의 순환에 대한 서사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과 불투명성의 상태로 삼차원에 현존하는 임의의 물질 및 형태에 대한 조각적 지각과 인식으로 이어져 지난 세기 내내 확장해 온 조각적 개념과도 맞닿게 된다. “투명하고 가는 것들을 일으켜 세우기”라는 이 글의 제목은, 그러한 조각적 인식과 관련되어 있다. 크고 무겁고 단단한 재료로 총체적이고 선명한 윤곽선을 지닌 조각적 이상을 실현하던 고전적 관습으로부터, 애초에 삼차원의 현실이 증명하는 “불확실성의 현존”에 다가가려 했던 현대 조각가들의 시도를 다시 떠올려 보면, 끝내 온전히 다 볼 수 없음을 전제로 한 불완전한 현존과 대면하게 되는 매순간의 경험은 홍유영이 말하는 ‘Negative Landscape’에 관한 지각과 인식에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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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사물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보이지 않아야만 하는 것을 들여다보려는 이러한 의지를 근거로 하여, 기묘하게 팽팽한 몽상들이, 미간을 긴장되게 하는 몽상들이 형성된다. 그때 관여하는 것은 놀라운 광경들을 기다리기만 하는 수동적 호기심이 아니라, 공격적인 호기심, 어원적 의미에 있어서 수사관적(搜査官的) 호기심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형상이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있는 듯 없는 듯, 자기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지 않는다. 더 선명히 보이는 위치를 찾아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반짝이는 빛이 자꾸 눈에 맺힌다. 그 주변에는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작품 속으로 공간이 침투한다. 형상의 정체는 ‘유리 조각’이다. 커다란 유리의 부분이자 작가에 의해 선택되고 창작된 미적 대상이다. 조금은 불안하지만 고고하게, 전시장 바닥(실제 공간)에 직립한 유리 구조물들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과 어우러지며 지각과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 좌대 위에서 혹은 벽에 설치되어 자신만의 예술적 공간을 점유하는 작품들도 예외는 아니다. 뚜렷한 윤곽선이 사라질수록 작품이 관계 맺는 공간은 확장되고, 작품의 존재감은 깊게 각인된다. 전하려는 말을 아끼는 만큼 의미는 넓어지고 깊어진다. 홍유영에게 “공간은 유연한 것”이기에 관계를 통해 끝없이 재구성될 수 있다. 그 관계에는 발견된 오브제도 중요한 요소로 기능한다. 시리즈(2023)는 제목이 암시하듯 “시각적으로 잘 안 보이고, 약하고 투명한 것을 통해 무언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네거티브(negative)는 그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다. 물질적인 공간으로 한정할 수도 없다.” 작가는 “네거티브와 포지티브(positive)가 서로에게 어떤 관계를 맺고 변화를 주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한편 발견된 오브제의 시작은 작가가 거주하던 집의 재건축이었다. 아파트가 철거된 현장에서 작가는 해체된 건축의 잔해들을 수집했다. 그중의 하나가 유리였다. 창문이었을 것이다. 커다란 탁자 위에 얹어졌던 것도 같다. 출처를 추측하는 과정, 공간의 이동, 의미의 변화는 모두 중요하다. 수집할 대상을 정해놓지는 않는다. “오히려 머릿속은 하얗게 비워진 상태에 가깝다.” 말로,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유독 눈에 들어오는 사물들이 있어서 그 시간과 공간의 미묘한 분위기에 반응하며 채집했다. 작가가 오브제를 응시하는 순간부터 작업은 시작된다. 오늘날 도시의 건축물인 집이 “단순한 수평성(水平性)에 지나지 않게” 되었고, “내밀함의 가치들을 알아보고 분류하기 위한 근본적인 원리의 하나”가 아니라 해도 여전히 “집은 인간의 사상과 추억과 꿈을 한 데 통합하는 가장 큰 힘의 하나” 이므로 많은 생각과 감정이 오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모두를 잠시 밀어둔다. 발견된 오브제의 내면을 바라보려는 작가는 고민하며, 사유하고, 상상한다. 홍유영의 시공간에서 연마되고 가공된 유리에는 그것이 처음 머물던 공간에서의 미미한 흔적이 남아있다. 작가의 섬세한 손길이 일부러 남겨둔 것이다. 그렇게 오브제가 머물던 일상의 시공간과 작가의 세계, 그리고 전시장에서의 시공간을 이어주는 가느다란 연결고리가 선명해졌다. 자본주의와 산업 시대를 보여주는 파편들, 그리고 재건축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순간 누군가의 머릿속에서는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영역과 예술적 영역의 연결이 일어날 것이다. 작가가 지각하는 도시의 풍경들, 그 안과 밖의 공간들, 그 속에서 찾아낸 물체의 재료들에서 특정한 사회 상황이나 이데올로기가 발견될 수도 있다. 홍유영 역시 동시대를 살아가며 반응하는 작가이기에 그와 같은 해석도 유의미하다. 그러나 스페이스몸미술관에서의 전시 [위상들(Topologies)](2023)에 놓인 작품들은 그러한 서사와는 거리를 유지한다. 상징이 아닌 형식적이고 재료적인 실험의 집합체로 존재하며 주변에 놓인 작품들 그리고 공간과 관계 맺는다. 단단하지만 깨지기 쉬운 물성, 약하면서도 공격적인 물체, 공간을 분리하지만 너머의 공간을 그대로 보여주는 투명한 벽, 분리인 동시에 소통 가능성, 단절이나 완전한 차단은 아닌 상태인 유리의 특유성은 참 매력적이다. 그리고 작가는 “일상에서 평면으로 존재하는 유리로 만들어진 입체” 홍유영 작가 인터뷰, 2023년 11월 4일. 라는 또 하나의 이중성을 중첩한다. 그래서일까. 홍유영의 유리 조각은 한눈에 파악되길 거부함에도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잔상이 오래 남는 풍경이다. 일방적 점유가 아닌 관계 맺음은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예민한 동시에 평온한 균형이다. 서로의 모서리를 지지대 삼아 서 있는 유리 조각들은 열린 상태를 지향한다. 조각의 안과 밖은 한 번도 단절된 적이 없었다. 관객은 조심스레 조각의 공간을 느낀다. 공간의 조각을 마주한다. 열려 있음은 유동적인 만큼 불안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만큼 조각, 예술 그리고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장받는다. 기하학적 단위, 즉 넓이나 부피로서의 공간은 측량할 수 있는 분명함을 갖는다. 그러나 공간의 의미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여지를 의미한다. 홍유영의 작품은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투명하고 하얀 상태에 가깝다. 그러고 보니 작가가 2005년부터 선보였던 하얀 오브제가 점차 공간으로 확장된 것-(2009)-도 더욱 유연한 공간(감)을 위한 것이었다. 흰색에는 무엇이든 왜곡 없이 더할 수 있다.모순적이지만, 스스로 돋보이길 원하지 않는 홍유영의 유리 조각은 시각적이다. 그리고 아름답다. 그 실루엣, 겹침과 만남은 매우 치밀하고 예리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결과물은 구체적인 형상 못지않게 유리라는 물질 자체에 집중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물체가 눈에 보이는 사물의 외부 형태라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물의 내부에서 움직이며 끝없이 새로운 형태를 구성, 생산하는 질료가 물질이다. 물질은 형상을 결정짓는 본질이다. 그것은 유동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열려 있다. 이런 이유로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물질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물질이 하나의 형상을 만드는 과정, 형태를 미리 규정하는 어떤 틀도 갖지 않는 이 과정이 바로 창조이기 때문이다. 또한 상상력이 여기에 동참할 때 물질적 상상력에 도달할 수 있다. 물질적 상상력은 이미지를 제공해주는 대상을 형태가 아닌 물질로 파악한다. 그리고 물질적 이미지는 물질적 상상력이 만드는데, 같은 물질이어도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른 속성의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이런 이유로 물질적 이미지는 정신적 이미지이다. 분명 에는 눈에 맺힌 이미지의 대상을 형태가 아닌 물질성에 기반해 발전시키는 물질적 상상력이 발휘되었다. “만상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의지는 “질료와 결부된 물질적 이미지들에 그토록 많은 가치들을 부여한다.” 그것이 비록 단번에 시선을 끌지 않고, 즉각적으로 연상 작용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홍유영의 유리 조각이 전하는 물질적 이미지는 느릿하고 여유 있게 나타난다. 대상의 물질성에 주목하게 되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세상을 만날 수 있다. 한편 “내부에 공간을 품고 있는 아주 얇은 입체물인 2.4mm 두께의 스테인리스 튜브(Stainless tubes)를 연결해 유기적인 형태를 만든” 또 다른 는 유연한 공간에 대한 작가적 실험을 한층 기교적으로 보여준다. 홍유영의 유리 조각이 그렇듯 스테인리스 튜브 하나가 삐끗하면 모든 균형이 바스러질 것 같은 구조물은 여유로운 긴장감을 전한다. 스스로 공간을 포함하고 공간에 놓임으로써 자기 자신보다 공간 그 자체를 드러내는 입체물이다. 이보다 더 담백할 수 없는 재료의 사용이지만 홍유영의 어떤 작품보다 공간과 물질에 대한 상상력을 작동시킨다. 운동성이나 착시 효과가 없음에도 이내 움직일 것 같은 인상은 물질과 공간, 그 안에 머무는 의식의 유동성을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공간을 부유하는 작품에서는 심지어 알 수 없는 리듬감마저 느껴지는데, 리듬은 생명의 역동성과 정신적 활동의 역동성을 위한 기반이다. 어떤 하나의 “질료를 사랑하는 방식”, 그것의 “특질을 예찬하는 방식은” “우리 전 존재의 반응을 드러낸다. 상상된 물질적 특질은 그 특질을 부여하는 주체로서의 우리 자신을 드러낸다.” 그리고 상상력은 모든 것을 포괄하며 “지각된 물질적 특질들의 장을 초월”한다. [위상들]에 전시된 작품을 제작하며 작가는 그 재료가 유리이든 금속이든 인위적으로 색을 입히지 않았다. 빛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재료인 유리와 금속의 물질성을 살리고, 상징으로 기능할 수도 있는 특정한 색에 의해 한정됨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자연히 홍유영의 작업은 빛을 머금는다. 빛의 작용으로 작품이 모습을 드러내고 감추는 상황은 역으로 작품과의 관계 속에서 빛이 모습을 드러내고 감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쩌면 작가는 가장 비물질적인 빛을 표현하기 위해 유리와 금속의 물질성을 탐구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다른 재료가 그렇듯 빛의 성질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에는 정말 아름다운 이미지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빛 역시 투명성을 소유하기 때문에 중첩된 여러 겹을 모두 인지할 수 있고, 한정과는 거리가 있어서 다양하고 불명확하다. 그만큼 열린 상태이고 관계가 중요하다. 에서는 재료도, 작품도, 공간도 그리고 빛마저도 서로 연이어 관계 맺고 “유연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감상자의 합류로 정점에 달한다. 관람객의 위치와 시선에 의한 작품, 공간, 빛의 변화는 무엇보다 중요한 경우의 수이다. 특히 함축적인 시와 같은 홍유영의 작품에서는 특정한 감상자의 눈에 맺힌 이미지, 감상자가 경험하는 물질성, 상상력을 통한 주관화가 중요하다. 공간은 관람객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따라 변화한다. 공간은 객관적일 수 없다. 그것은 경험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예측한 것 이상으로 무수한 층과 연결망이 겹친다. 작가는 자기의 작업이 “직접적으로 설명해주거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작품을 경험하며 상상하길 원할 뿐이다” 의미 생성은 독립된 작품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세계 속 한 명의 응시에서 시작된, 작가의 주관성을 담아낸 오브제는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소유한 작품이 되어 특정한 공간에 놓였다. 그곳에서 관계 맺고 감상자에 의해 또다시 새로운, 주관적이고 특별한 의미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하나의 대상에 그것의 시적 공간을 준다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공간을 그것에 준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가진 “내밀한 공간의 팽창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대지 그리고 휴식의 몽상』, 정영란(역), ㈜문학동네, 2019, p. 18.홍유영 작가 인터뷰, 2023년 11월 4일. 가스통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곽광수(역), 동문선, 2003, p. 80, p. 108.이-푸 투안, 『공간과 장소』, 구동회, 심승희(역), 도서출판 대윤, 2011, p. 89.강성중, 「바슐라르의 물질적 상상력과 디자인 창의성 연구」, 『한국디자인포럼』, Vol. 31, 2011, pp. 384-385. ; 오정빈, 김동진, 「바슐라르의 상상력이론으로 본 현대건축에서의 주관적 이미지 발생구조 연구」, 『한국실내디자인학회논문집』, 제30권 6호, 2021, p. 145.가스통 바슐라르, 2019, p. 19.홍명희, 『상상력과 가스통 바슐라르』, ㈜살림출판사, 2018, p. 33.홍유영 작가 인터뷰, 2023년 11월 4일.홍명희, 「바슐라르의 리듬 개념」, 『프랑스문화예술연구』 제47집, 2014, p. 512. 가스통 바슐라르, 2019, p. 97.홍유영 작가 인터뷰, 2023년 11월 4일. 가스통 바슐라르, 2003, p.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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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별도의 기획전: 반영하는 물질》 옥상팩토리 1.7~3.12글_이주연 / 옥상팩토리 어시스턴트 큐레이터작가이자 아트디렉터 장해미가 운영하는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 옥상팩토리는 작가 중심(기반)기획의 일환으로, 작가가 연구하는 재료 물질 매체 자체를 소개하고 전시를 통해 재료 ‧ 물질적 관계성에 주목하는 ‘별도의 기획전’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새로운 재료와 매체를 사용하고 시도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발생하는 시간적, 재료적 낭비를 줄이고 현실적인 재료 구매법, 사용법 등을 공유하여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재료, 매체, 기술 탐구가 이뤄지길 바라며 시작되었다. 2021~2022년에는 재료 실험 자체에 집중하여 한 작가가 연구하고 있는 재료나 기법, 기술, 공학적 실험 등을 선보이고 공유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면 2023년에는 ‘상반기-물질’, ‘하반기-비물질’이라는 두 축으로 같은 재료 및 매체를 사용하는 작가들의 네트워킹을 통한 의미 확장의 장을 마련했다. 각 프로젝트 종료 후에는 결과자료집을 제작하여 해당 재료를 사용하고 있는, 사용하고자 하는 작가들 간의 정보를 지속적으로 공유할 수 있게 하고 기획자들에게는 재료의 물질성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2023년의 ‘상반기-물질’의 키워드는 본인의 논문 「비근대주의 관점에서 살펴본 나움 가보의 예술적 전망 고찰」(이주연, 2021)에서 착안해 매체실험과 투명성을 바탕으로 ‘반영하는 물질’로 선정했다. 지난 석 달간 진행한 《별도의 기획전: 반영하는 물질》(이하 《반영하는 물질》) 은 회화, 조각, 설치, 키네틱, 인터랙티브 등 장르 제한 없이 ‘반영하는 물질’을 재료로 한 작품들로 예술작품과 주변의 상황, 현실을 지각할 수 있는 전시를 만들고자 하였다. 이때 반영하는 물질은 거울, 아크릴, 렌즈, 투명하거나 반짝이는 물체와 같이 주변을 비추는 물리적인 재료 일체를 염두에 두었다. 실험전시는 오버랩/릴레이 형식으로 1~6부로 구성하여 10주 동안 6명의 작가와 13점의 작품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다. 회차마다 물리적 ‧ 내용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설치방식을 통해 각 작가가 사용하는 ‘반영하는 물질’이 여러 층위에서 서로 포개지고 반사하며 적극적인 침투가 발생했다. 변화하는 공간 구성에서 여섯 작가가 사용하는 물질(거울, 스마트폰, 프리즘, 크롬, 분광필름, 유리 등)의 속성과 효과를 살펴보았으며 모든 작품을 함께 감상하는 일은 전시의 마지막이자 세미나를 진행하는 3월 12일 하루였다. 참여작가 6인(강수빈, 김준수, 박재성, 심규승, 최은지, 홍유영)의 미발표 구작과 신작 위주로 각자의 주변 환경을 ‘반영하는 물질’로 제작한 개별 작품들이 도시, 인식, 가상과 실제, 현실, 감각 등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고 상호작용하여 물질의 성질을 극대화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회차마다 작가와 기획자 간에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작품 설치 단계에서도 각자의 영역보다는 전시 전체의 구성과 효과에 집중한 설치가 이뤄졌다. 1부의 시작인 심규승의 〈빛나는 구름〉(2023)은 유동적인 설치법으로 ‘분광필름’을 설치하는 위치와 방법에 따라 효과를 실험해가며 작업을 확장해가는 점이 기획 의도와 부합하여 1~6부 전체를 점유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2부부터 함께 한 강수빈의 〈반영의반영의(NULL)〉(2022~2023) 또한 6부까지 공간 곳곳을 돌아다니며 로봇청소기 위에 달린 거울과 이를 비추는 스마트폰 속 SNS화면을 통해 능동적이고 자발적으로 다른 작품들을 반영하고 비추며 다양한 장면을 연출하였다. 2부는 강수빈 〈부푼 벽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2022), 박재성 〈AH-o-HA〉(2022), 심규승 〈Light of the world〉(2023)와 장르적으로 구별되는 여섯 작품이, 3부는 강수빈, 김준수 〈Element of sense ver 1.1〉(2021), 심규승과 물성이 강조된 다섯 작품이 조우했다. 전시를 감상할 때 작품 하나의 내용과 의미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작품의 주변까지 감상의 폭으로 수용하여 자신만의 감상의 세계가 넓고 깊어지면 발견할 수 있는 현실이 무엇인지 탐색하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4부는 전시장 속에서 교차하는 강수빈, 김준수, 심규승, 최은지 〈Common Space_03〉(2020), 〈Re-Arcade drawing_03〉(2020)의 작품에 사용된 재료(거울, 프리즘, 분광필름, 유리)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이었다. 작품에 사용된 재료(반영하는 물질)의 물질성과 상호작용성에 주목함과 동시에 다양한 상황의 순간이 ‘재료’에 함의되어 있음을 인정할 때 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5부는 홍유영의 〈Negative Landscape〉(2023)가 전시공간 곳곳에 침습하여 반사와 굴절이 무한으로 반복되는 상황을 연출했다. 어쩌면 《반영하는 물질》에서 보는 것들은 경계면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여러 경계면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지금, 우리는 새로운 관계와 수많은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는 장을 만들었다. 1~5부는 여러 만남에 대해, 6부에서는 오고 간 시간의 겹 사이에서 남겨진 강수빈, 김준수, 심규승, 홍유영의 다섯 작품으로 전체와 분절, 투명함과 불투명함, 무색과 유색, 분산과 굴절 등의 재료적인 성질을 논하며 전시를 마무리했다.해당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재료연구세미나’는 3월 12일에 열려 예술현장 관계자들이 논의를 이어갔다. 본인은 불확실성과 미결정성이라는 실험전시의 마지막 자국을 남기며, 어떠한 방식으로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내비쳤다. 세미나에서 참여 작가 6인은 현실적으로 재료를 구입하고 다루는 방식과 본 프로젝트의 효과와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본인은 ‘반영하는 물질’ 재료 자체의 반사성에 대한 논의에서 더 나아가 반영하는 물질이 관람하는 자신과 현실까지 도출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장된 논의에 대한 기대를 밝혔다. 2부에서는 권태현 비평가가 ‘반영하는 물질(재료탐구)과 실험전시(전시 형식)에 대한 의미’를 주제로 세미나를 이끌며 본인이 주목해왔던 투명한 물질에 대한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재료’ 중심적인 서사를 생성하는 전시의 의미를 돌아봤다. 이에 더해 유리와 플라스틱 등 현재 우리의 주거 환경을 이루고 있는 재료를 사용한 작품들과 과거 미술사에 남은 투명한 재료를 사용한 작품의 계보를 짚었다.타인의 작품과 물리적으로, 내용적으로 적극 침투하고 상호작용하는 전시설치 방식을 통해 이번 프로젝트이자 전시는 여러 층위에서 의미를 발생시킬 수 있었다. 각 작품에 등장하는 ‘반영하는 물질’의 속성을 살펴보고, 작품 간의 관계성을 파악하여 지금 여기에서 일시적이면서 지속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현실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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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살아간다는 것의 방법장진택 독립큐레이터홍유영의 작업은 시적이다. 그의 작업의 형상은 단순하거나, 명료하며, 간결한 상태로 완결한다. 하지만 그것은 무작위적이거나 우연적인 것이 아니며, 그만의 일정한 문법에 따라 어떠한 운율과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러한 형식의 순수성은 그 외면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깊고 넓은 의미의 함축을 투영하기 위한 것이며, 이는 관객의 상상력을 극단적으로 자극한다. 문학에서는 단순명료한 단어나 구, 절 등의 문장 성분들을 조합함으로써 시라는 작품을 완성하지만, 시각 예술의 범주 안에서는 재료나 그 물성에서부터 매체까지를 아우르는 오브제나 평면의 파편들 혹은 그 조합을 통해 작품이나 전시를 구성한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작가의 작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는 방식이 문학에서 시의 그것과 닮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홍유영의 작업은 어떠한 이유로 인해 시적으로 되어야만 했을까. 그는 왜,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기에 이러한 방법론을 작품에 투영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서 나는 홍유영의 작업을 공간이나 용적과 같은 물적 영역과 이와 동기화하는 체계와 사상의 영적 영역(여기서는 정신적 영역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 그리고 개인 또는 집단의 삶이라는 인적 영역의 세 가지 벡터로 크게 구분해 조망한다. 물적 영역은 시각 예술에서, 특히 조각의 영역에서 주요한 요인이자 계기로 작동할 수 있다. 우선은 각각의 재료를 가공한 후, 이를 원하는 물리적 형상으로 조형하며, 각 부분이나 전체를 이루는 최초의 구성요소로 완성한다. 여기서 적정한 수준으로 완성된 일부는 그것이 다시 작품이라는 상위의 개념을 완성하기 위한 또 다른 세공의 과정을 필요로 하는데, 그 과정은 여전히 물적 영역에 머무르는 것이기도 하거나, 때로는 그 영역을 이탈하는 개념적인 의미 부여의 행위를 거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모든 과정이 종료되고 나서야 비로소 작품은 제 의지를 내재한다. 그제야 그 작품은 완성된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 ‘존재한다는 것’은 곧 ‘일정한 정도로 어딘가를 점유함’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작품과의 상호작용에 있어 ‘일정한 정도의 점유’라 함은 다시 이것이 ‘특정한 단계를 형성하고 있음’과 동일하게 간주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홍유영의 작업 구축하는 계층을 한층 더 얇은 것으로 이해하게 하면서, 그 막들을 켜켜이 올려 만들어내는 어떤 오브제를 좀 더 (반) 투명하게 보이도록 한다. 이는 물적 침범을 통해 감상의 영역과 감각의 영역 사이를 흐리고, 동시에 비가시적인 영적 영역과 일상에서의 실천을 동반하는 인적 영역 등의 상이한 영역들을 자신의 작업 세계 안에서 공존하게 하는 효과적인 연결고리로 기능을 하게 한다.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작가가 오브제라는 물적 영역을 (반) 투명하고 얇은 레이어로 치환하여 작업을 구축하는 것은 분명히 이 영적 영역의 벡터를 작품 속에서 공존케 하기 위함일 것이다. 작품의 표면과 내부를 구분 짓는 구성 방식은 보통의 미술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반적인 형태이지만, 홍유영의 경우에는 그 접착의 정도가 비교적 더 견고하고 더 단단하게 결합하여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는 작가가 실제 그 장소성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재료를 작품 안으로 끌어들일 때 더욱 부각하며, 기존의 공간적 특성을 은유하는 표현의 기법을 적용할 때 역시 유사한 인상을 발산한다. 구체적으로는 그가 실제 그 장소에서 발견하거나 사용한 물건들을 작품의 일부로 위치시키거나, 실제 그 장소의 상황이나 맥락을 반영하는 성질을 작품의 구현에 적용하면서 이 효과는 더욱 극대화한다. 바로 이때, 물적 영역에서의 감각함은 그 자체로 발산하는 외적 의미의 한계를 지나친다. 그리고선 곧바로 작품의 안과 밖이라는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들며, 이로써 영적 영역을 물적 영역과 함께 단숨에 꿰뚫어 이어낸다. 말하자면, 홍유영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우리는 단순히 그 외양이나 내면 어느 한쪽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며, 그 사이의 상호 동반적 상태를 전제하고 그의 작품을 마주해야 한다.이렇듯 홍유영의 작품이 물적 영역과 영적 영역의 교차점 위에서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는 동안, 이를 창작하기 위한 작가의 삶과 이를 마주하며 회고하는 관람자의 삶은 작가 작업을 이루는 마지막 벡터로 자리한다. 지금까지의 서술과 마찬가지로, 홍유영의 작업은 작업으로의 진입을 유인하는 오브제라는 물적 영역, 그리고 하나의 재료이자 소재로 역할 하는 이 오브제를 (또는 오브제와 오브제를) 엮어내면서 작업의 개념과 그 의미 시사를 도맡는 영적 영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나는 작업 구축에서의 이 마지막 벡터를 이른바 인적 영역이라 명명하는데, 이는 두 영역의 앞단과 뒷간으로부터 이 전체의 영역을 관통하는 한편, 그 모든 가로지름의 출발과 종착을 도맡는다. 그의 작업에서 결국 모든 것은 삶으로 회귀한다. 삶은 나의 것을 지칭하기도 하고, 너의 것을 지칭하기도 하며, 우리네 그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먼저 내보임으로써 너와 우리의 삶을 상기한다. 작가의 작품은 곧 작가의 삶의 일부이거나, 적어도 우리 삶의 일부이다. 그 일부의 경험은 우연으로 일어났었거나,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이지만, 타인에게 자신의, 자신에게 타인의, 우리에게 우리의 삶을 돌이키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이제 남아 있는 사실은 모든 것이 뒤섞인 상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끝으로, 나는 상기의 서술 방식으로 인해 혹여나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 발생할 수 있는 오해나 몰이해의 여지를 지워내며 글을 맺고자 한다. 나의 비평은 홍유영 작업을 구성하는 요소를 세세히 뜯어 나열하고 있지만, 그것은 작업의 구성요소를 나누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이 뒤섞여 있음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내가 홍유영의 작업을 위치시킨 교차의 지점, 즉 물적 영역과 영적 영역 그리고 인적 영역은 모두 다르지만 같은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그 차이보다는 이 영역들 사이를 마찰시키고, 융합하며, 연결하는 작가의 방식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위의 여러 영역을 작가의 작품을 구축하는 벡터로 인식하는 동시에, 이 모든 구조의 처음과 끝에 삶이 있다는 나의 비평은 작가의 혹은 작가에 의한 작업의 방법론이 작가의 혹은 작가에 의한 삶의 방식과 같을 수 있으며, 그것은 곧 우리의 혹은 우리에 의한 삶의 방식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